오뜨 꾸뛰르 / 불

프로메테우스 : 생산 사슬(ED)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다른 신들에게 불을 빼앗는 잘못을 저지른 후, 몸이 바위에 묶인 채로 새들이 그의 간을 쪼아먹고, 상처난 간이 밤새 회복되면 새들에게 다시 간을 쪼아 먹히는 영벌에 처하게 된다. 마르크스에게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적인 인물이다. 이는 불로 어떤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결국 어떤 종류의 생산력을 강화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와 그의 자유에 대한 ‘성인’과 같은 태도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자본론』에서도 프로메테우스는 자본과 그에 연결된 기계류의 사슬에 속박된 프
롤레타리아로 나타난다. 여기서 ‘사슬 chained이라는 단어는 그저 묶여 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이것은 기술적인 발전 덕분에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그 후에 다시 현대 섬유산업에서 생산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을 ‘사슬’에 빗대어 말하는 것다. 이 사슬은 부유한 소매업자들의 요구로 가능하다. 이 소매업자들은 목숨을 위협하고 방화로 협박하는 방식으로 계약자들 간의 수직적인 관계를 강요하고 이러한 압박은 결국 섬유 제조업에 종사하는 공장 노동자 개개인에게 이어진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이중적인 특성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일꾼에 대한 헤시오도스 이야기에서는 불이 주는 선물인 자유는 한번 열면 모든 종류의 악이 밖으로 나오는 판도라의 박스와 함께 주어진다. 이 이야기는 프로메테우스를 적으로 여기는, 다시 말해 생산성이 중요해진 산업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편협한 이해는 프로메테우스의 진정한 양면적 의미ambivalence를 잃어버린다. 이것은 식민지였던 페루부터 현대의 방글라데시에 이르는 지역의 생산자들이 말 그대로 그 작업장과 공장들을 사슬화시킨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를 이룬 것 때문에 그 이익이나 좋은 점들이 희석된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술적인 발전을 바탕으로 고도로 정교화된 생산 과정을 이룩해냈지만, 반면에 의류산업의 발전은 노동 착취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근무 환경과 공존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바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철저히 보안된 시스템안에 사슬화된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들이, 마치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벌받은 간처럼, 근무할 때 마다 심하게 지쳐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먹고 살기 위해 그만두지 못하고 스스로 재생력을 가져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면서 고통속에 죽어간 섬유 공장 노동자 전태일의 상황도 이것과 다르지 않았다. 때는1970년, 한국이었다. 아마 100년쯤 전 영국이나 미국 산업사회의 노동자들도 이때 한국 사람들과 같은 간절함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 전태일이 대변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환기가 되지 않아 먼지가 가득 쌓인 작업환경에서 최소 하루에 14시간동안 일해야만 했는데, 이들을 포함, 20세기 초반 일본의 실을 자아내는 사람들부터 20세기 후반 한국 의류산업의 재봉사들에 이르기 까지 아시아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룩하는데 직접적인 이바지를 한 사람들이다. 자본축적과 가부장제의 공생관계는 한번도 명확하게 수면위로 드러나거나 풀이된 적이 없다. 그들은, 권위주의적인 정권의 언어로 표현된 것에 의하면, ‘수출 전선’에 놓인 ‘산업 사회의 투사들’이었지만, 실제로는 착취받거나 이 ‘투쟁’에서 신체적 데미지를 입어 끝까지 그 몸이 소진되도록 내버려두는 것 외에 그들에게 주어진 다른 선택사항은 없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은 서울 평화시장의 전태일의 분신 이후 결성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의 수가 남성노동자들보다 5배나 높았던 동일 섬유 공장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조합의 결성이 혁명적인 변화를 꾀하지는 못했다. 그들은1972년에 노조 대표로 여성 노동자를 뽑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에서 관리하는 노동조합의 남성 노동자들과 관리자들과의 투쟁을 직면해야했다. 1976년에 있었던 그 다음 노조 대표자 투표에서는 아예 여성 노동자들이 투표하는 것 조차 금지 됐으며 이에 여성 노동자들은 단식 투쟁을 단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에게 진압당했다. 그들은 벗은 몸으로 시위할 때 사람들이 그들에게 손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것도 효력이 없었다. 이 사건에서 몇몇은 감옥에 갖혔고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들도 대다수 였다. 이렇듯 잔인한 만행들의 예는 한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 자본 축적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준다.

극심한 노동착취를 당했던 젊은 한국 여성들이 만든 생산품으로 축적된 자본은 하이테크 및 자본집중적인 생산에 따라 투자되거나 섬유산업의 노동집중적인 공장이나 저수당 지급 공장의 외주제작으로 넘겨져 쓰였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나 온두라스에있는 여성노동자들은 1970년대 평화시장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비슷한 환경의 한국인 소유의 섬유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2010년 방글라데시에서는, 치명적인 공장 화재가 일어나기 불과 며칠전, 한 공장 직원이 자신이 일하던 공장의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의해 진압 당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사망하였다. 온두라스의 상황을 보면 이런 열악한 공장에서 10년이상 일한 여성 노동자는 현재 활동하는 전체 노동인구중 6.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아웃소싱 이펙트
초과 하중, 초과 작업, 초과 근무… 그리고 그 곳에서 일어난 일

다카에 있는 미퍼 섬유 공장 건물 6층에서 일어난 전자 회로 기판 과열에서 초래된 화재로 인해 24명의 공장 직원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사상을 당했다. 그들은 강제적인 초과 근무를 하던 중이었고 공장의 모든 비상구는 닫혀있었다.

“당신이 만약 당신에게 할당된 초과 근무를 거절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해고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외 근무는 낮과 밤에 상관없이 요구됩니다.” 소팔, 캄보디아 섬유공장 직원

유명한 브랜드의 회사, 소매업자 혹은 그들에게 물량을 제공하는 다른 회사들은 어떤 정도의 양이 어떤 시간내에 생산 가능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통계나 특별한 계산 없이 가능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섬유 공장과 계약한다. 이렇게 극심한 과중업무에 대비하여 잘 갖춰지지 않은 과중한 전기 장비의 사용으로 인해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는 화재와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는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보건 안전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이런 사고에 기인하는데, 글로벌 산업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임금 수준을 갖고 있는 이 섬유 공장들은 모든 것보다 경비에 대한 문제를 공장 경영의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요소의 확장은 사실 더 부유한 대량 소비자들에겐 이익이며, 이런 염가 의류산업은 이 대량 소비자들에게 끼칠 수 있는 경제적 위기의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섬유 공장의 위기는 결국 일에 대한 노동자들의 정신적인 압박과 물리적, 신체적인 위험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1990년 부터 2000년 사이에 방글라데시에서 100건 이상의 섬유 공장 화재사건이 있었다. 2011년에는 그 10년 사이에 일어난 것보다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이런 화재와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는 비단 방글라데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도와 중국, 아르헨티나에서도 일어났는데, 이 나라들에서 일어난 사고를 보면 밀입국 해외 이주자들을 직원으로 고용한 공장들sweatshops의 문제를 일제히 드러내고 있다. 2012년에는 영국의 두 섬유공장에서도 이런 화재 사고가 일어났었는데, 그 중 하나는 큰 패션 브랜드의 직판과 거래하던 래스터에 있는 공장에서 출구가 통자물쇠로 잠겨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뿐만아니라 이곳은 불법적으로 낮은 임금을 주는 곳이었다. 약 100년전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츠 공장에서 일어났던 것과 유사하게 방글라데시의 예를 보면 이렇게 잠겨진 출구와 비상구들이 치명적인 화재 사고의 주 원인으로 밝혀진다. 이 굳게 잠겨진 문들은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공장주들의 태도에서 기인하며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대량 파업을 막기 위한 초과된 업무 시간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때문이기도 하다.

2006년 2월 23일.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에서는 BSCIC 산업 구역에 위치한 KTS 섬유회사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84명의 직원이 사망했다. 이 공장은 미국에 있는 회사들에 납품하는 여러가지 의류를 제조하는 곳이었다. 공장주는 이날 한 마감일에 맞춰 공급량을 생산하기 위해서 갑작스럽게 1100명의 직원들에게 초과 근무를 지시했다. 이 화재 사고는 전기 누전사고로 인한 것이었다. 비상구는 불법적으로 잠겨있었는데, 이 때문에 공장안에 있던 많은 직원들이 하나의 좁은 계단으로만 대피할 수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비슷한 화재사고들이 예전에도 발생했었다. 사망한 직원들 중에는 12살에서 14살 밖에 안되는 소녀들이 7명이나 있었다. 이 공장주는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2006년 3월 3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카바리토 지역. 4명의 어린이와 2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6명의 볼리비아 밀입국자들이 시간외 근무를 빈번히 자행하는 섬유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으로 사망했다. 이곳에서는 6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밖에서 문을 잠근 방에 갖혀 있었다. 이 화재는 불안전한 전기 배선 때문에 일어난 누전사고로 발생했다.

2010년 2월 25일, 다카에 위차한 가지퍼 지역.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7층 건물인 가립 스웨터 공장 2층에서 일하던 직원 20명이 사망했다. 다른 예들 처럼 공장 직원들은 일하는 도중 나가지 못하기 위해 안쪽문과 대문 모두 잠겨있는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다.

2010년 12월 14일.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화재사고 바로 한 주뒤에 화재 안전에 대해 컨퍼런스를 갖고 있던 섬유 마감 부서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10층 건물에 있던 9층 하밈 그룹의 한 부분이었던 대츠잇 스포츠의류 공장에서 일어난 것이다. 전기누선으로 인한 발화로 일어난 화재였다. 24명의 직원들이 사망했고 심하게 부상을 입거나 실종된 많은 직원들이 있었다. 비상구가 잠겨있던 탓에 여러 직원들이 위층에서 밖으로 뛰어내렸는데, 만약 이 사건이 점심시간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훨씬 더 많은 직원들이 공장 건물안에 갖혀 사망했을 것이다. 이 공장은 갭, 토미 힐피거와 JC페니 브랜드에 물건을 납품하는 곳이었다. 갭에서는 이 사고에 대한 애도를 표현했다.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전태일, 섬유 공장 직원, 1970년 서울, 대부분의 직원이 여성인 섬유 공장의 심각한 노동 착취로 시작된 시위에서 분신함.
“석탄과 물을 공급하여 증기기관을 작동하게 하는 것처럼 , 자동차에 기름을 채워 바퀴가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 ”
칼 마르크스: 자본론 1, 1866
“어린 재봉사들은 꼬박 9 일 내내 작업복을 벗지 않았고 , 아주 잠시 동안만 침대에 누워 쉴 수 있었다 . 제공된 짧은 휴식 시간 안에 노동자들이 쉽게 씹어 삼킬 수
있도록 잘게 썰어진 음식이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 ”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1887

“ 옛날에 심판이나 심문을 공공 장소에서 행했을 때는 커다란 고문대 , 엄지손가락을 죄는 고문 기구 혹은 철 치아모양으로 된 고문 기구같은 것들이 나열해 있었다 . 우리는 이런 상황이 지금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철치아와 같은 굳건한 태도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며 , 손가락을 죄는 기구는 우리가 써야하는 강력하고 빠른 기계와 같으며 , 커다란 고문대는 화재가 나도 빠져 나갈 수 없어 결국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 공장건물과 다르지 않다 .”
트라이앵글 셔츠 공장에서 근무 중 발생했던 화재사건에서 기사회생한 로즈 슈나이더만Rose Schneiderman은 희생자들이 죽고 난 후에도 공장 작업환경이 여전히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우리는 고용주에게 좋은 사람들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만들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그녀의 감정을 토로했다. 이런 억울한 감정은 22살 젋은 청년 전태일에게도 있었는데, 그는 1970년, 서울에 있는 평화시장안의 국민은행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이것은 3만명에 육박하는 여성노동자가 최악의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가 신문에 게재한 것이 별다른 수확없이 수포로 돌아가고 난 이후의 일이다. 이 분신 사건 때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면서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 “일요일에 쉬게 하라”는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리를 주장했다. 만약 이 일이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정신적 병리현상이라고 치부 받았을지 모른다. 마치 2012년 초반에  현대자동차 노조 중 한명인 신씨의 분신사건에 대해서 인류학자들 불교나 힌두교의 문화의 징후라고 편협하게 진단해 버렸던 것이나 혹은 그 시위에 대한 경찰의 진압을 피하기 위해 그 사건 내부에서 그의 ‘시위 방식’에 대한 ‘수정’을 강요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전태일이 죽은 후 그가 저항했던 것들이 개개인과 그 개인이 속했던 조합만을 위한 이기적인 운동이었다고 이후에 결성된 독립조합 구성원들에게 폄하되는 일도 있었지만, 그가 이런 현대적인 거절에 대해서 끝까지 반항했다는 것은 기억할 만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1911년 트라이앵글 셔츠 공장 사건, 이로 인해 뉴욕의 빙햄튼 섬유공장에서 일어난 심각한 화재, 그리고 노동에 대한 규정과 강요에 대한 시위 때문에 31명이 사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희생과 평화시장의 청계피복노동조합의 결성 이후 그들의 작업환경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 후에도 전태일의 친모와 그의 여동생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은 권위적인 남성 지상주의자들 조합을 상대로 더 좋은 작업환경을 얻기 위해서 싸워왔다.
섬유 공장 직원들은 그들의 작업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파업이나 시위, 노동 조합 결성등의 방법으로 그들의 심각한 착취에 대한 계속적인 운동을 벌여왔다. 여러 사례를 보면, 불은 이런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한 공격, 시의 수단으로 쓰였다.

1779년에 영국, 랑카셔에 있는 버카크레 소재의 공장에서 일하던 조셉 아크라이트는 수직기 제조자들의 시위 중 일어난 화재로 사망했다. 몇년 뒤 페루에 있는 투박 아마루 시위에서는 스페인 쿠조의 남쪽지방에 위치한 공장에서 초과 근무를 강요받은 인도 노동자들을 해방해 줄 것을 주장했는데, 이 노동자들은 그들이 일하는 베틀에 묶여 그들의 공권이 박탈될 운명에 처해있었다. 이 시위에서는 재도 남지 않을 때 까지 이 공장을 완전히 방화하려고 했다. 그 후1795년 인도 쿤다로에서는 방직공들이 짚으로 동인도 회사 브로커의 형상을 만들어 완전히 불태웠으며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공급을 압박하는 공장에 대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장기적인 시위중의 한 부분이었다. 1811년부터 12년까지 영국에서는 심각한 식자재 값 인상에 따라 킹러드 ‘King Lud’ 라고 이름을 단 방직공들이 임마누엘 버튼Emanuel Burton의 집에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버튼이 새로운 기계 직조기를 사들여 자연스럽게 방직공들을 해고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결정적으로 방직공 조직들 중 3명이 그 전날 맨체스터에서 무장한 공장 관리자에게 살해 당한 것을 보고 이 사건을 저질렀다. 1860년, 다시 인도의 상황으로 돌아와서, 벵갈리 세입 농부들은 중요한 섬유 염색 재료인 인디고를 생산하도록 영국 지주에게 강요 받는 상황에 대해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쌀값이 700퍼센트나 인상하는 동안 그들이 자급할 수 있을 만한 양의 음식도 수확할 수 없었다. 아예 땅에 아무것도 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염색 재료로 쓰기 위해 그들이 키운 식물을 제조하던 공장에도 방화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영국 식민 회사에 대한 인도 노동자들의 또 다른 시위를 재촉했고 결국 이 사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여러 공장들은 문을 닫아야 했으며 이 후 1896년에 일어난 스와데시 운동에서는 영국 공장에서 만든 대량의 의류를 홀리(역주: Holi, 힌두교에서 봄에 하는 축제)에서 쓰였던 불에 집어 던졌다. 또한 20세기 초반 멕시코에서는 섬유공장 직원들의 파업 물결이 시작됐다. 리오 블랑코 지역에서 그들이 증오하던 컴패니 스토어 Company Store를 방화하는 것으로 불거졌는데, 이 가게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시간외 근무에 대한 강요가 시위를 일으킨 주원인이었다. 1919년 인도에 있는 아마다바드 지역에서는 롤라트 법안Rowlatt Act에 대한 시위의 한 부분으로 이 지역에 위치한 51개의 영국 식민청사에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좀 더 최근에는 소수자들 그룹에게 불이나 화약이 시위의 수단으로 쓰였는데, 이 때도 섬유 공장 노동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1987년에 독일 페미니스트 그룹, 로테 조라Rote (Red) Zora와 아마조넨Amazonen은 애들러 회사 10개의 지점에 소이탄을 설치하였다. 참고로 애들러 회사는 서독에서 가장 큰 의류 회사중 하나로 염가의류 판매를 주로 하는 회사인데, 이 의류는 대부분 한국과 스리랑카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사건 때문에 백만달러 이상의 경제적인 손실이 있었는데, 애들러 회사가 섬유 공장 노동자들의 수요를 맞출 수 있도록 강요 받았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는 노동자들 또한 스스로 급진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세르비아의 노비 파자에서는 2009년 11월말, 10명의 여성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사유화된지 얼마되지 않은 애드 트라이코타자Ad Trikotaza라는 공장 드레싱룸을 선점하였는데, 이 사건은 공장주가 정해진 노동자들의 임금 지불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 시위는 당시 섬유노동조합Union of Textile Workers 구성원들의 후원을 받았다. 드레싱룸의 치명적인 위생상태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조합 사무실로 소환당했지만 이 여성노동자들은 여기서 가스 탄약 폭발물을 설치하여 사무실을 폭파하는 사건이 있었다. 계속되는 폭발과 연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그 구역을 빠져나가기를 거절하고 반복적으로 다시 사무실을 선점하여 시위를 벌였다.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는 불이나 화약이 상징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미국에서 수입된 중고 의류에 반대하는 시위의 한 부분이었다. 섬유 노동조합 신디칼레 로파Sindicales Ropa의 여성 노동자들은 이 수출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후에 도시 한복판 광장에 있는 허수아비를 불태웠다. 이 허수아비는 미국의 중고 의류가 입혀 있었다.  모든 시위의 수단이 실패한 절망의 끝에 ‘불’이 터질 때 있다. 중국, 푸존에 대만인이 소유한 가오푸 섬유공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물건을 훔쳤다는 혐의로 부당하게 해고당한 여성노동자들이 이 공장에 방화를 시도했다. 그들은 해고된 상황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상소하거나 절충안을 찾을 수 없었고 이 사건은 매우 심각한 사태로 번질 수 있었다. 이 공장에는 불법으로 지어진 노동자 숙소가 있었고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여기서 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공포는 아웃소싱 산업 비극의 전체적 상황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06년 5월 20일부터 23일 까지 다카에서는, 정상적인 근무 시간에 대한 노동자들의 탄원을 포함한 다른 여러 요구를 고용주가 거절한 이후에 이 공장의 노동자들 14개의 공장에 방화하고 경찰의 진압을 받았는 일이 있었다. 2009년 6월에 다시 다카의 한 지역인 아슐리아에서는 임금과 해고하는 것에 대한 분쟁이 있었는데, 한 섬유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이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 사고로 결국 대규모의 시위로 갈등이 심각해졌고 많은 경찰들과 100명 이상의 공장 직원들이 고무총에 맞아 사상하였다. 이 직원들은 이 사건에 대해 보복하는 것으로 석유를 뿌려 스웨터 공장, 세계의 섬유공장, 두개의 세탁공장, 두개의 섬유 보관 창고를 포함, 8000개 이상의 공장 기계와 수천개의 생산된 의류에 방화하면서 하민 그룹의 섬유공장 건물을 공격했다. 이 심각한 보복에 대해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이 사건의 모든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재산에 대한 권리는 철저하게 보호되었다.

신성화된 사유 : 철저한 보안
“시내에서 어린 소녀들이 산 채로 방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 일자리를 원하는 구직자들이 매우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 중 146 명이 불에 타 죽는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 동료들이 예측할 수 없는 때에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뿐만 아니라 해마다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불구가 된다 . 일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매우 값싸게 취급되지만 재산과 소유물은 신성시된다 . ”
로즈 슈나이더만,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여성 노동자 방화 사건 생존자, 1911년 4월 2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앞 연설 중. 노동자 손실에 대한 공장장의 강박적인 대처로 노동자들이 감금되고 그 안에서 죽어 나갔다.
1994년 6월 중국의 주해 경제특구에 있는 홍콩 소유의 유신 섬유공장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몇몇은 화재로 사망했지만, 화재 중에 불타지 않은 섬유들을 찾으러 다시 건물로 들어가라는 요청을 받고 간 노동자들은 화재로 인한 건물붕괴로 대부분이 사망 하였다. 이 사고로 93 명이 사망하였고 160 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0년 11월 25일, 다카에 있는 차우드리 니트 공장에서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였다. 모든 문이 잠겨있어 공장안에 있던 51명의 노동자들은 출구를 찾는데 실패 했고, 이 사고로 공장 안에서 전원 사망했다. 이 사망자 중의 대부분이 십대 소녀들이었다. 이때 이들은 강제적으로 시간 외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다. 화재로 공장이 정신없어진 틈을 타서 노동자들이 도망가는 것을 우려했던 공장 수위는 1 층 문을 다 막아 놓았다. 그리고 열쇠를 가지고 있던 총 관리인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극도의 피로

“살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하는 이 삶이 싫다 . 죽고 싶다 . ”

서울 소재 그린힐 섬유 회사 직원 새미의 일기 중. 1988년 3월 25일 공장에 난 화재로 같은 건물 직원 기숙사에 살던 21명의 직원들과 함께 사망.
“ 여성이 섬유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한 직업에 4-5 년 이상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 . 대부분 더 이상 일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강상태로 사직을 선택하게 된다 . 일이 너무 힘에 부치는 것이다 .” 프라티마 폴 마윰버 박사, 방글라데시
” 주어진 휴식시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야간 근무가 더 힘들고 몸은 더 쉽게 지칩니다 . 그래서 일하는 중간에 졸지 않도록 ‘ 타이밍 ‘ 이라는 각성제를 복용합니다 . 몇몇은 이 각성제를 너무 많이 먹고 이미 약물 중독 상태에 있습니다 . 만약 우리가 잠시 졸기라도 하면 감독관들이 우리를 때리거나 흔들어서 깨우고 우리를 심하게 질책합니다 .” 판그림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의 연설 중, 1978.

대기업과 관련업계 소매업자들의 권력과 요구에 의한 과중한 업무의 양은 그 생산품에 대한 또 다른 계약자과 하청인에게 다시 연결되며 결국 재봉틀앞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 젊은 여성에게로 그 부담이 떨어진다. 하루에 12시간, 주당 6시간 혹은 7일내내, 옷을 완성하기 위한 똑같은 박음질을 연이어 계속하는 것은 공장에서 흔히 할당되는 양의 작업이긴 하지만 결코 인체공학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분량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런던의 재봉사들에 대해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작업할 때 딱 한가지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일정 작업량 이후 바늘을 더이상 붙잡고 있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신체적 한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노동자들은 지금도 19세기 만큼 많은 시간 동안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 요즘에도 초과 근무는 이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작업조건인데 그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너무 적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상사에게 요청받거나 혹은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명목상의 기회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것 이상의 공급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구나, 문학적 사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극도의 피로에 대해 다룰 때 은행가 사람들이나 사회 지도자들, 전문분야의 연구자들, 경찰 혹은 패션 디자이너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빠르게 바뀌는 디자인과 그 요구에 맞춰 하부구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스리랑카의 정치학 연구에서 이런 리서치가 있긴 했지만 약간 다른 목적을 위해서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졌다. 여기서 다룬 대안으로는 좀 더 어린 노동자들을 채용하거나, 처음부터 여자보다 ‘스트레스에 더 잘 대응할 줄 아는’ 남자 노동자들을 채용하거나 혹은 노동자들에게 TV볼 시간을 제공하여 스트레스를 풀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 연구를 들여다보면 적어도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많이 일하고 있는 이유가 주어진 일에 비교적 순종적으로 대응하는 그들의 특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이렇게 좋지 않은 조건에서 오래 일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아질 수록 스트레스를 견디거나 건강과 영양부족 문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줄어든다.” 인도에서 섬유 공장 직원으로 일했던 바티와 쿠마의 분석에 의하면 노동자들에게 나타나는 극한의 피로는 7년 정도가 지나면 아주 극명하게 그 부작용이 드러난다. 32살부터는 이 부작용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이 연구에서 청각 장애와 호흡장애, 반복성 긴장장애repetitive strain injury, 심박수의 급격한 증가, 삯일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초과 근무가 길어질 수록 더 심해지는 불면증, 영양실조, 시력 감퇴에 대해 다루었다.

뿐만아니라 멕시코에 있는 GAP과 캘빈클라인 생산 공장에서 일어났던 더 심각한 사례들이 있다. 아무 신체적인 문제가 없던75퍼센트의 노동자들이 입사한 후에 오래 일하면 할수록 더 많은 병을 얻게 되는 것이 밝혀졌다. 제인 콜린스Jane Collins는 이런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 주원인은 많은 작업량의 압박, 노동자에게 불리한 작업환경, 근무시설, 섬유 회사들의 고정된 근무 계약조건, 과중한 일의 압박, 저임금 문제 등이 있다고 한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많은 수요에 대한 작업 할당량과 물건을 빈틈없이 잘 만들어야 하는 재봉틀 앞의 상황을 관찰하기 위한 통계적 공정 관리(SPC, Statistical Process Control)의 도입 이후에 작업의 압박은 더 증가했다. 한 시간마다 일의 생산량에 대한 관리, 감독이 이루어지는데 너무 빈번한 검사에 공장 관리자도 지칠 지경이다. 앞에서 언급한 이 모든 문제들 때문에 노동자들은 매우 짧은 시간에 만성피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누군가가 불평을 한다면 사람들이 적은 이익을 위해 더 많은 양의 일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는 계속되는 아웃소싱의 사슬에 따라오는, 끊임없이 여러 방식으로 일어나는 노동자들에 대한 위협이나 다름없다.

이런 일의 압박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에 대해서 상사의 진정한 인식이 있었던 것은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대거 졸도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였다. 이 사건을 ‘고스트 패닉’이라고 부른다. 이런 사고는 캄보디아(M&G국제 회사, 안풀 섬유산업)과 방글라데시(판도라 섬유회사, 디칸타 스웨터 공장)에서 일어났었다. 공장 매니저들은 이렇게 누적된 과중한 업무 분량의 현실을 몇몇 약한 사람들에게 가끔씩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 정도로 인식하려고 하거나 혹은 이런 공격들을 단순히 여성노동자들이 그들의 양식화된 매니지먼트에 대해서 대항하는 모양의 한 예 정도로 인식하려 한다. 참고로 캄보디아에서는 신체적인 결함으로 일어난 노동자들의 작업 중 혼절 사고에 대해 신체적으로 허약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방법으로 일종의 처벌을 가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연표의 내용은 매우 선택적으로 구성되었다 . 의류 산업과 그 공장을 둘러싼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지만 완전한 역사적 기록이 아닐 수 있다 . 최근에 일어난 치명적 화재 사건에 대해 면밀하게 기록된 공공의 자취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 이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들이 살아있을 때 제대로 대우 받지 못했던 것 처럼 그들의 죽음 또한 자주 경시된다 .

1533 잉카 족들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급히 후퇴해야 했을 때 그들의 가축들이나 죄수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떠남. 그러나 빼곡히 옷을 쌓아놓은 창고는 완전히 방화해 버렸는데, 이는 스페인 침략자들이 그 옷들을 전리품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

1780 페루에 거주하던 스페인인들에 대한 투팍 아마루의 반대 시위의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섬유공장에서 심하게 많은 작업의 양을 강요받고, 베틀에 묶여 공장에 감금당한 상태로 일해야 했던 인도 노동자들의 공권을 되찾기 위함이었음. 후에 이 공장은 이 시위 이후 전소됨.

1795 인도 쿤다로, 4명의 직원들이 짚으로 동인도 회사 브로커 데이비 비어파스 셰티의 형상을 만든 후 불태움. 이것은 회사에 대한 장기적인 저항의 한 부분.

1812 러다이트(Luddites, 신기술 반대자)라고 불리우던 당시 베짜는 사람들은 이 공장의 주인이었던 이마뉴엘 바르통의 집을 전소 시킴. 이것은 그 공장의 노동자들 중 3명이 전날 무장한 관리인에게 살해당한 바로 다음날 일어난 일이었음.

1831 중국 관동 지역에 있는 피전트 프로듀서는 공장주가 실짜는 기계의 도입 이후, 이 기계를 파는 사람들의 상점을 아예 불태움. 당시 여태까지 모든 직조에 쓰였던 것들 중 이 기계가 사용 된 곳은 0.12% 에 불과함.

1844 프루시아에서 자영업으로 일하던 실레지아 사람은 자본주의 상인 즈완지거가 제안했던 임금 삭감에 대해서 고통받다 즈완지거의 대저택에 방화.

1860 멩갈의 세입자로 일하던 농부들은 인디고 염색재료 재배하기를 강요받고, 이것 때문에 그들 스스로 공급해야 했던 쌀 재배 시간 역부족. 이 기간 동안 쌀 값은 약 7배가 격증했으며, 이 후 이 농부들은 아무 것도 심거나 농사하지 않겠다고 선언, 그 식물을 거두어 염색 재료로 쓰기 위한 공정을 하던 공장에 방화.

1860 미국 로렌스, 펨버튼 공장 화재에 잇따른 건물 붕괴로 145명 사망 및 160명이 심한 부상을 입음. 이 피해자들 중  11살 밖에 안된 어린아이도 있었음.

1893 상하이 면 섬유 제조공장은 중국 정부의 도움으로 닫았던 공장 문을 다시 열 수 있었는데, 이는 이 공장이 면 제조로 성공적인 사업을 했기 때문. 그러나 화재 당시 영국인들 위주로 일하던 화재 담당 부서가 화재 진압하기를 거절. 그 후로 어떤 손실이나 상해에서 회복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음.

1896 인도, 국가주의자 스와데시의 의류공장의 식민적인 붕괴에 대한 시위의 한 부분으로, 매우 많은 양의 영국옷이 인도에서 봄마다 하는 축제인 ‘홀리’에서 쓰는 불에 한꺼번에 전소.

1907 멕시코 푸에블로, 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같은 섬유공장에서 공장주가 직원들을 감금하는 사건, 그 후 노동자들은 그들이 매우 싫어했던 회사 매점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등의 사고 발생.

1907 미국 북동쪽 도버에 위치한 벨벳을 제작하는 코체오 의류회사에 방화 사건 발생. 노동자들이 하던 작업을 끝내면 생산품은 임금이 더 낮은 미국 남쪽으로 보내짐.

1911 뉴욕시 소재의 트라이앵글 셔츠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146명의 여성 재봉사들 사망. 이 때 비상구는 단단히 잠겨있었음.

1913 미국 뉴욕, 빙햄튼 의류 회사에서 일어난 사고로 31명 사망.

1941 영국 허더필드, 부스 의류회사에서 41명의 직원 사망사고 발생.

1957 미국 뉴헤이븐, M. 베어 의류 회사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15명의 직원 사망.

1970 한국 서울, 섬유 공장 직원 전태일,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 자살.

1988 한국 서울, 그린힐 섬유 공장에서 21명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사망함.

1990 방글라데시 다카, 사라카 섬유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32명이 사망했으며, 그 중 25명이 여성들이거나 어린이들인 것으로 밝혀짐.

1991 중국 동관, 신예 우비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72명이 사망하고 47명 부상당함. (이 중 대부분이 평생 불구자로 남음.)

1993 중국 복주, 대만 소유의 가오푸 섬유 공장에 절도 혐의로 해고당한 여성노동자들에 의한 방화 사고 발생. 그 중 한명은 사형선고 받음.

1993 태국, 케이더 장난감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사고로 188명이 죽고 500명 이상 부상. 피해자들 대부분이 여성 재봉사들로 이루어짐.

1994 중국 주해 특별경제구역에 위치한 유신 섬유공장에서 갑자기 일어난 화재 및 건물 붕괴 사고로 93명의 직원이 사망하고 160명이 부상.

1996 방글라데시 다카, 루사카 섬유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22명 사망.

1997 방글라데시 나라양간지, 자하나라 패션회사에서 일어난 화재로 20명의 직원 사망.

1997 방글라데시, 상하이 어패럴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24명 사망.

2000 이집트 알렉산드라,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사고 이후에 다시 공장으로 들어갔던 섬유공장 직원 27명이 갑작스런 건물 붕괴로 전원 사망.

2000 방글라데시 다카, 마크로 스웨터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23명의 직원 사망. 당시 한 해동안 일어난 세번째 화재사건으로 기록됨.

2000 방글라데시 다카, 글로브 니트 공장에서 화재로 12명의 직원들 사망.

2000 방글라데시 다카, 차우드리 니트 공장에서 십대 소녀들 여럿을 포함한 51명이 화재사고로 사망.

2004 미르퍼에 있는 섬유공장, 주변에서 일어난 변압기 폭발로 인해 7명의 여성 직원이 압사 사고로 사망.

2005 방글라데시 나라양간지, 사안 니트 회사에서 23명 사망.

2005 방글라데시 파라시바리, 스펙트럼 공장에서 적어도 70명 이상의 섬유공장 직원이 사망함.

2006 방글라데시 가지푸르, 야무나 섬유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6명 사망.

2006 방글라데시, 치타공, KTS 합성 섬유 회사에서 일어난 화재사고로 직원 62명 사망, 100명 부상.  
2006 방글라데시, 이만그룹의 공장에서 변압기 폭발로 일어난 화재 사고로 다수의 직원 압사 사고.

2006 방글라데시, 사이엠 패션회사에서 3명이 사망하고 50명 부상하는 사고 발생.

2006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4명의 어린이들과 2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6명의 볼리비아 밀입국자들이 섬유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사망.

2007 인도 캘커타, 한 섬유 공장에서 7명의 직원이 사망.

2008 이집트, 경찰이 섬유공장 직원들의 파업을 진압하던 중 보복 공격으로 경찰차 여러대가 전소됨.

2009 볼리비아 코차밤바, 미국에서 수입하는 중고의류의 양이 증가된 탓으로 신디칼레 로파의 노동조합 여성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코차밤바의 광장 한가운데 있는 허수아비를 방화하는 사고 발생.

2010 방글라데시 가지푸르, 가리브 스웨터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21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심하게 다침. 8개월 전, 같은 공장의 직원4명 사망.

2010 가지푸르, 매트릭스 스웨터 공장에서 잘못 울린 화재 경보로 인한 압사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심한 부상.

2010 방글라데시 다카, 하밈 그룹의 한 부서였던 스포츠 의류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24명이 불 구덩이에서 사망, 다수가 부상 당하거나 실종됨.

2011 한국 구미, TK 섬유 회사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5명의 직원이 사망하고 2명 사상.

2011 인도 악바퍼, 유닛 길란덴 섬유 회사에서 2명이 사고로 사망하고 여러명이 부상.

2011 인도 뭄바이에 있는 돔비빌리 의류 공장에서 4명의 직원이 살해당함.

2011 캄보디아 프놈펜, 총, 최루탄 및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섬유 공장 직원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중 15명의 직원들이 심하게 부상당함. 이 시위는 그들이 일하던 공장이 화재 때문에 전소된 이후 그들에게 미지급된 임금에 대한 시위였으며 이 공장의 직원들은 대부분이 여성들이었음.

2012 인도 상걸, 코다리 그룹 의류회사에서 직원 2명이 살해 당함.

2012 인도 구자랏, RK 패션 산업에서 일어난 큰 화재 사고로 직원 2명 사망.

2012 심하게 고문당한 후 살해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류 공장 직원 아미눌 이슬람의 사체 발견. 그는 이전에 미국의ABC TV 프로그램에서 하밈그룹의 화재 사건과 그와 관련한 미국 회사들의 문제점들에 대해 인터뷰 하기로 예정 되어있었음.

 

베틀북 / 진격로

세계화 시대인 지금까지 오래전 부터 계속되고 있는 섬유 산업 발전과 이를 둘러싼 식민주의적인 상황에 대해 장기적인 작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오뜨 꾸뛰르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사람만에게 맞춰 옷을 제작하는 꾸뛰르 문화(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자른다는 의미)는 고급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꾸뛰르의 등장은 비서양 지역 대부분의 의류문화를 ‘원시적’이거나 ‘토착적’인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오뜨 꾸뛰르는 유럽지역에서 아직도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있다. 이 패션 라인은 각각 다른 의미와 기능을 가진 다섯 종류의 옷으로 구성된다. 의미상으로는 아주 동시대적이고 역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역사는 매체에 흡수되어 그 자취를 드러낼 것이다.

패션

우리가 오늘날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패션은 단순히 옷을 입는다는 것 이상으로 ‘현대의 관료적 사회의 출현에 대한 메타포’를 가진다. 1619년 리마 지역의 부랑자, 방랑자들은 사람들에게 더이상 구걸하지 말고 일해서 직접 돈을 벌으라는 사람들의 말에 아주 편안한 태도로 ‘자신들은 투쟁을 위해서 옷을 입고dressed 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저가 의류

밖의 상황에 그다지 동요되지 않는 서구의 문화는 저가의류가 심하게 낭비되는 현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상황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퇴폐적인 감각들을 오히려 한껏 즐길 수도 있다.

소비자들

동시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소비될 물건을 만드는 생산자들로부터 ‘소비자들’을 분리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적 욕구라는 것은 생산품을 만드는 생산자의 노동의 역할에 대해서는 은폐하고, 페티시즘, 이에 대해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마케팅 캐치프레이즈에서 알 수 있는 생산자들의 뻔뻔스러운 태도를 포함하며, 그리고 아주 보편적인 범주안에 있는 ’소비자들’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는 기만적인 민주주의 같은 것들이 있다.

섬유

섬유는 높은 경제적인 가치에 비해 적은 무게 때문에 나라간 무역의 선구적인 상품으로 여겨졌다.

섬유 공장 노동자들

남쪽에서 북쪽으로 섬유공장이 계속 이전했는데, 이것은 북쪽에 살고 있던 훈련 받지 않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였다. 이러한 대이동이 가능했던 것은 섬유 공장이 상대적으로 쉽게 이전이 가능하다는 특징과 특별한 교육없이도 가능한 섬유 생산 작업의 특성에 기인한다.

노동자들의 고투

섬유 산업안의 잘 바뀌지 않는 여러 고리타분한 작업 규칙들과 노동 착취에 반대한 여러 종류의 저항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주로 여성 노동자가 이 저항의 주동자가 된다. 광업 종사자와 마찬가지로 섬유 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여겨졌고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인식했다. 그러나 이런 저항과 투쟁에 대해서 현대 산업은 어떤 다른 일자리보다 낮은 임금으로 계속 대응해 오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어려운 상황들은 세계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소매업 종사자들

섬유 생산, 섬유의 제단, 재봉 작업은 각각 다른 곳에서 진행해도 옷의 디자인과 마케팅은 한 곳에서 중점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석유를 이용한 교통비를 절감하기 위함이며 아주 짧은 시간에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정보의 양에 따라 계속 바뀌는 작업 계획에 대한 대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코드의 도입, 컨테이너 수송, 무인창고 시스템, 공급자 위주의 재고 관리와 같은 현대 물류 관리의 혁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혁명은 이 산업과 관련한 하청인에게 일에 대한 더 큰 부담을 주게 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직접적 감리, 감독, 시간외 근무, 경비 절감에 대한 인정사정없는 규제를 이용하여 이 산업과 노동자의 임금을 쥐락펴락하는 공장 주주들의 잉여가치를 그들 스스로 사유하게 하고, 가장 심하게는 이 공장에 속한 노동자들을 실제로 죽일 수 있는 섬유공장 화재와 같은 치명적인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Copyright 이네스 도우약

제시된 글에 대한 리서치를 포함, 존 바커가 이네스 도우약과 함께 텍스트를 작성하였다. 헬가 베버가 이미지를 발전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월터 지러프는 자수작업을 도와주었고, 롤랜드 핀켄슈테트는 롤러 마운팅을 만들었다. 허만 위담은 테일러링을 맡아 작업하였고, 노버트 마고멧츄닉이 사진 이미지 작업을 도와주었다. 비탈리 레산 전시에 필요한 설치와 콜라주 작업을 도와주었다. 리나 호프만과 미와 버거는 모델로 작업하였다.

Thanks to 루카스 퍼쉬, 토마스 지텔버거, 김인선, 김혜진, 러스 노악 더 보이랍스, 안젤로와 브리지떼.
Special thanks to 로저 M. 뷔르겔
제작 : 안테 D. 라우너 텍스타
인쇄 : 테시투라 아띨리오 보티넬리
번역 : 전효경
감수 : 마틴 하우스덴
스캔, 이미지 편집, 포토몽타주 : 마르커스 뵈괴터, 노라 쉴러
재제작 : 픽셀 스톰
그래픽 디자인 : 3007 뷔엔 이바 드라나즈, 조첸 필